허균은 자신이 사는 집의 이름을 사우재(四友齋)라고 하였다. 그것은 벗과 자신을 합하면 넷이 되기 때문이다. 그 세 벗이란 허균이 살아생전에 이미 사라진 옛 선비들이다.

 첫째는 진나라 처사 도연명이다.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그는 한가롭고 고요하며 작은 일에 대범하여 항상 마음이 편안했으니, 세상일 따위는 마음에 두지도 않았다. 그래서 가난을 편히 여기고 천명을 즐기다가 죽었다. 그의 맑은 풍모와 빼어난 절개는 아득히 높아 잡을 길이 없었다" 그리하여 그는 도연명을 깊이 흠모만 할 뿐, 그 경지에 미치지는 못한다고 하였다.

 그 다음은 당나라 한림 이태백인데 그를 좋아 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그는 뛰어나고 호탕하여 온 세상을 좁다고 여기고, 임금의 총애를 받는 귀인들을 개미 보듯 하며 스스로 자연 속에서 방랑했다" 그런 그가 부러워 따라 배우려고 하였다.

 그 다음으로는 송나라 학사 소동파이다. 소동파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썼다. "그는 허심탄회하여 남과 경계를 두지 않으므로 현명한 사람이나 어리석은 사람, 귀한이나 천한 이를 가리지 않고 모두 더불어 즐기니, 유하 혜가 자기의 덕을 감추고 세속을 좇는 풍모와 같은 데가 있다" 그래서 이 세 사람으로 벗을 삼고 굳이 속인들과 어울리지 않아도 충분히 행복하다고 여겼다.

나는 허균의 경지에는 티끌만치도 따라 갈 수 없어 다음과 같은 벗을 두었다.

첫째는 동서양의 고전을 벗으로 하였다. 고전의 매력을 사람으로 치면 양귀비나 클레오파트라의 윙크보다 진하기 때문이고 우리나라의 경광 중에는 보름달이 뜬 해운대 바다보다 더하기 때문이다.

 둘째는 글을 쓰는 게 나에는 큰 벗이다. 글을 쓰는 것은 말과 같이 날아가지도 않고 그대로 남게 될 뿐 아니라 하고 싶은 얘기를 다 할 수 있어 어떤 벗과의 친함보다 비할 길이 없다.

 셋째는 내가 연주하는 기타Guitar 다. 기타로 연주하고 노래를 부를 때면 너무 행복하기 때문이다. 나의 심안이 평안함은 물론 온 사물이 다 즐거워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는 (축구)공이다. 공이 하나있으면 땀을 흘릴 수 있어 운동으로 적당하다. 그리고 공은 항상 둥글어 모나지 않아 어디로든지 잘 굴러간다. 이 네 가지가 나의 벗이다.

 그런데 아직 내 집 이름을 짓지 못했다. 고향 이름을 따서 심포서원이라 했는데 서원이라는 게 너무 흔해 온전히 정하지는 않았다. 또 인터넷 블로그에 지을까 시골 농가를 하나 구입할까 이것도 연구 중이다.

 내가 이들과 벗하는 이유는 통일문제와 동북아 국제관계를 공부하면서 약간의 문약에 빠진 것 때문이고 학문을 학문답게 하지 못했기에 이제는 고전을 탐구해보고자 하는 것이다.

 요즘 박사라는 것이 해외에서나 국내에서나 학문적인 내공이 다소 부족한 것을 서로가 잘 아는 바이니 이것은 동서양의 고전을 두루 공부하지 못한 것이 연유라 하겠다. 내가 요즘 고전 읽기에 몰입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김기환